1. 방관과 회피
직장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사소하지만 골치 아픈 문제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업무상의 거대한 프로젝트나 기술적인 난제는 오히려 오기와 논리로 정면 돌파하곤 하지만, 때로는 전산 자산 관리나 행정적 절차에서 터져 나온 작은 꼬임이 직장인의 영혼을 가만히 흔들어 놓곤 합니다.
2025년 가을, 회사에서 듀얼 모니터 환경을 구축해 주며 지급받은 27인치 모니터 2개. 당초 "이렇게 넓은 화면을 다 쓸 수 있을까?" 싶었던 기분 좋은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전산 자산 시스템 속에 내 명의로 모니터 '한 개 더', 즉 총 3개가 등록되어 있다는 기이한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 유령 같던 모니터 한 대가 수개월 뒤 제게 얼마나 커다란 부끄러움과 깊은 깨달음을 안겨줄지 말입니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 전사적으로 가장 가슴 졸이는 행사가 찾아옵니다. 바로 '전산 자산 실사' 기간입니다.
내 명의로 되어 있는 세 번째 모니터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 사방을 헤맸지만, 모니터의 행방은 그야말로 묘연했습니다. 창고를 뒤적여보고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떻게든 되겠지', '누군가 잘못 등록했으니 알아서 바로잡히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 싹텄습니다.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며 피해 다녔던 것입니다. 하지만 덮어둔 문제는 반드시 더 큰 모양새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몇 달을 그렇게 흘려보냈을 무렵,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실사가 확인되지 않은 미확인 장비에 대해 손망실 처리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전사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개인의 과실일 경우 100% 본인 변상 처리함."
붉은색 선명한 글씨로 박힌 공지 사항을 본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막막함과 체념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결국 경위서를 작성하고 담당 임원 결재를 받으러 가며, 입안에 고이는 묵직한 한숨을 겨우 삼켜야 했습니다.
이대로 순순히 포기하고 억울하게 모니터 값을 100% 변상하기에는 직장인으로서의 자존심과 논리가 허락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상황을 다시 짚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상식적 논리: 회사가 특정 개인에게 동일한 사양의 모니터를 이유 없이 3대나 지급했을 리 만무하다.
가설 수립: 내가 모니터를 수령하여 어디엔가 은닉하거나 빼돌린 것이 아니라면, 전산 등록 상의 오류이거나 타 부서 배정 과정에서 태그(Tag)가 잘못 매칭되었을 가능성이 99%다.
"내 명의로 누군가의 모니터가 잘못 얹혀 있다." 이 마지막 논리의 끈을 잡고 자산 관리 담당 부서에 상황을 설명하며 정밀 재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내 방관이 만들어낸 결과였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풀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열쇠를 던진 셈이었습니다.
재확인을 요청하고 며칠 뒤, 장비 관리를 총괄하시는 직책 과장님께서 직접 제가 근무하는 층으로 올라오셨습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그토록 사방을 뒤져도 나오지 않던 모니터는 너무나 허무하고 쉽게 발견되었습니다. 위치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제 자리 대각선 건너편, 타 부서 동료의 책상 위에서 조용히 화면을 밝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초기 배정 당시 물류 이동 과정에서 시리얼 넘버 입력이 꼬였던 전형적인 시스템 오류였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순간 고마움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타 부서 동료의 책상에 놓인 모니터 자산 태그 한 번만 유심히 들여다보았어도, 혹은 담당자에게 적극적으로 현장 확인을 부탁했어도 훨씬 일찍 끝났을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발 벗고 나서서 깊이 파헤치려 하지 않고, 그저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피해 다녔던 지난 몇 달간의 내 모습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엔지니어로서, 또 베테랑 직장인으로서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뼈아프게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2. 타인의 수고
자칫 무거운 변상 책임을 질 뻔했던 상황을 발로 뛰며 말끔히 해결해 준 자산 담당 과장님의 꼼꼼함과 정성은 가뭄 끝의 단비처럼 고마웠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해당 부서에 음료와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과장님은 "자산 관리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며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타인의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누군가가 기울여준 정성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직장이라는 팍팍한 공간에서 우리가 서로를 지켜내는 최소한의 온기라고 믿습니다. 비록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다음 주에는 마음을 담아 작은 성의를 꼭 전할 생각입니다. 뜻하지 않은 타인의 호의와 정성을 경험한 덕분일까요? 그 사건이 원만히 해결된 이후, 신기하게도 꼬여있던 다른 업무의 일상들까지 제 생각대로 술술 풀려나가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3. 감사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꺼내면, 정말로 감사할 일들이 계속해서 찾아온다."
우리는 이미 삶의 중요한 법칙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분주함과 바쁘다는 핑계, 그리고 타성에 젖은 태도 때문에 그 당연한 진리를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이번 '모니터 행방불명 사건'은 저에게 단순한 금전적 변상 위기를 넘긴 해프닝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 회피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과 일상에 대해 가져야 할 정성을 다시금 일깨워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하게 마주할 때,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한 얼굴로 응답해 줍니다. 오늘 하루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정성을 다해 일하고 있을 모든 직장 동료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전합니다. 오늘처럼 감사함으로 가득 찬 매일이 이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