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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끝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딛는 용기, 새로움에 나아가다. 백척간두진일보

by DG 2026. 8. 11.

1. 새로움에 나아가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새로움'은 늘 두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설렘이라는 화려한 얼굴 뒤에는, 슬며시 눈을 맞추며 웃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얼굴이 숨어 있습니다. 익숙하고 잘하던 업무를 뒤로하고 완전히 낯선 영역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하는 직장인에게, 그 두려움은 때로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장벽처럼 다가오곤 합니다. 익숙함이 주는 아늑함에 안주하고 싶을 때마다 낯선 환경은 늘 우리를 시험대에 올려놓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랜 시간 몸담으며 손에 익었던 조선 CAD ADMIN 업무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직했을 때, 제게 주어진 역할은 Plant CAD ADMIN이자 3D Modeling Leader Engineer였습니다.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접목해야 하는 위치였기에, 낯선 환경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견뎌내며 간신히 적응해 나갔습니다. 지금생각하니 저의 인생의 큰 고비였습니다.

하지만 겨우 한숨을 돌릴 무렵, 변화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건설 업계의 흐름 속에서 저는 문득 제 안의 깊은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기술과 경험만으로 앞으로의 날들을 버텨낼 수 있을까?'

'혹시 나는 변화가 무서워 현실 안주라는 안전지대에만 머무르려 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해내며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과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이 던진 질문들은 편안함에 길들려던 제 마음을 강하게 깨웠습니다. 치열했던 고민의 끝에서, 저는 '배관응력해석 및 배관설계'라는 완전히 새로운 길의 문을 두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반신반의의 시선, 그리고 자존심을 내려놓은 출발...

마침 회사에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고, 제게 새로운 업무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과연 저 친구가 저 까다로운 업무를 해낼 수 있을까?"

"늘 하던 일이나 잘하지,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할까?"

"부서에 다른 문제가 있나?"

 

응원보다는 반신반의와 우려가 섞인 눈빛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그 업무는 팀 내에서도 모두가 기피할 만큼 난이도가 높고 까다롭기로 유명했습니다. 단순한 도면 작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수치 해석과 물리적 역학을 이해해야 했기에 중압감이 상당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거대한 압박감에 짓눌려 손사래를 치며 손사래를 치고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곁에서 저를 믿고 격려해 주시던 선배 부장님들의 진심 어린 권유에, 저는 마침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래, 거창한 완성품을 한 번에 만들려 하지 말자. 정밀한 도면을 그리기 전 밑그림부터 차근차근 그리듯, 하나씩 색을 입혀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멋진 그림이 완성되지 않겠는가. 지금은 자존심도, 과거의 경력도 모두 내려놓자. 머리를 숙이고 맨 밑바닥부터 다시 배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

 

2.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막막하고 아득했던 그 시절, 제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준 소설 『상도』 속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AI를 이용한 백척간두진일보 이미지

 

지금까지도 제 인생의 이정표처럼 가슴 깊은 곳에 세워둔 글귀입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끝, 그 위태로운 곳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발짝을 더 내디딘다.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매 순간을 마주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도망칠 곳도 없다는 배수진을 쳤습니다. 장대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공포가 밀려왔지만, 역설적으로 그 절박함은 '여기서 내딛는 이 한 걸음이 나를 이전과 전혀 다른 넓은 세계로 안내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변해갔습니다. 모르는 것은 어린 후배에게라도 머리를 숙여 물었고, 밤을 지새우며 하나씩 배움을 채워나갔습니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도면을 수정하고 해석 값을 검증했습니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치열한 의지는 단순히 업무 능력을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 삶을 대하는 태도와 성격까지 더욱 단단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다시 본업인 CAD System 업무로 돌아와 저만의 전문성을 더욱 깊게 다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치열했던 시간은 제 직장 생활, 아니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단단하고 양질의 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배관응력해석을 다루며 얻었던 고도의 입체적 사고 능력과 시야는 지금의 본업을 수행하는 데도 남들과 다른 독보적인 자산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참 많이 헤매기도 했고, 스승 같은 선배들에게 엄한 지적과 쓴소리를 들으며 홀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밤도 많았습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하며 자책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웃으며 누군가에게 후담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하고 자부심 어린 추억이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도 새로운 시작이나 익숙지 않은 도전 앞에서 주저하고 계신가요?

익숙한 편안함과 작별하고 새로운 길을 나서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위태로워 보이는 높은 장대 끝에서 내딛는 그 두려운 한 걸음이, 어쩌면 당신의 삶을 가장 아름답고 빛나게 만들어 줄 '결정적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벼랑 끝에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늘로 날아오르는 첫 날갯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저는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준 그 시절의 기억을 조용히 꺼내어 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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